《에디토리얼 씽킹》 출간 후 후속편에 대한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개념과 중요성은 잘 알겠으니 실무에 직접 적용하는 방법론을 알려달라는 요청이었죠. 그때마다 조금 난감했어요. 편집력은 취향, 가치관, 인지적 습관, 과거 경험 등이 총동원되고, 무엇보다 암묵지에 속한 역량이라 ‘모든 맥락에서 모두에게 통용되는 스킬’을 정리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그렇다면 교육과 배움이 불가능한가? 그건 아닙니다. 주니어 시절 제가 경험했던 것처럼 업력 높은 선배가 도제식으로 후배를 끼고 맞춤형 피드백을 주는 방식은 유효합니다. 대신 이 가르침은 복제할 수 없고, A라는 사람에게 유효했다고 B에게 유효하리란 보장이 없기에 대량화하거나 자동화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에서 다른 한 사람에게로 전수할 수밖에 없죠.
이 지점에서 <에디토리얼 씽킹 데일리> 같은 프로그램이 2026년 시대 배경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AI가 그럴 듯해 보이는 결과물을 무한생성하는 바람에 ‘인지적 주권과 판단력’이 너무나 중요해졌는데, 여전히 시장에는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늘리는 스킬 이야기만 넘쳐나는 듯 보였거든요.
이렇게 공급이 끝없이 많아질 때 귀해지는 것은 사실 기술이 제거한 바로 그것이에요. 살아있는 사람이, 특정한 장소에서, 자기 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되돌릴 수 없고, 복제할 수 없고, 배속으로 돌릴 수 없는 경험 말이에요.
과정의 생략이 우리를 위태롭게 한다
“AI가 ‘딸깍’ 하면 유려한 문장을 줄줄 만드는데, 왜 이렇게 고통을 느끼며 원고를 써야 하지?”
어느 날, 작업실에 처박혀 끙끙 대다가 저런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모두가 빠르게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환경에서는 과정이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암묵지에 속한 역량은 과정 없이는 길러지지 않는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어요. 암묵지는 텍스트로 전달하기 어려운, 오직 반복적 수행을 통해 몸과 인지체계에 각인되는 지식입니다.
제가 에디토리얼 디렉터로서 외부 필자의 원고나 후배들의 기획안을 검토하면서 ‘이 문장은 문제가 있다’, ‘이 흐름은 지루하다’, ‘이 지점에서 생각이 뭉개져 있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니어 시절부터 수천, 수만 번의 작업을 거치며 오류, 실패, 성공 패턴을 몸과 인지체계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이 왜 안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안 되는 문장을 직접 써 보고, 그것이 안 된다는 피드백을 경험하고, 왜 안 되는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정말 내것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신과 인지적 주권을 위해
그래서 <에디토리얼 씽킹 데일리>를 기획할 때,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했습니다. 의미화 가능성을 발견하고, 해부하고, 뒤집고, 연결하고, 시점을 옮기고, 전제를 의심하고, 구조를 읽는 과정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12개의 과제를 준비했어요.
마냥 쉽고 편한 과제는 아닐 거예요.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업이 아니라 어려울 거예요. 평소에 쓰지 않았던 뇌근육을 써야 해서 낯설 거예요. 그런데 이런 ‘마찰’을 통해서만 자기것이라 할 무언가가 생겨요.
프랑스 철학자 멘 드 비랑(Maine de Biran)은 저항을 만나지 않으면 ‘나’라는 자의식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미국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어느 정도의 저항이나 장애가 있을 때 생명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간절한 욕망을 갖게 되고, 진지하게 사고하며, 주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다"고 했고요. 심리학에서 자신의 행동과 결과를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행위주체성(Sense of Agency, SoA)’이라고 부르는데, 마찰이 없을 때, 다시 말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때, 이 감각이 떨어진다고 해요.
AI가 뭐든 대신 해주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유능감 대신 표류의 감각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에디토리얼 씽킹 데일리>에 반대의 경험을 심어두었습니다.
밀도 높은 상호작용이 필요하기에 10~12인의 정도의 소규모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훈련을 함께하실 분에게도, 프로그램을 이끌 저에게도 무척이나 수고스러운 경험의 연속일 거예요. 하지만 그래서 설렙니다. 6주간의 땀내 나는 마찰 끝에 우리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거니까요.
<에디토리얼 씽킹 데일리>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ask@agencement.kr 로 편지 보내주세요. 저 역시 여러분과 상호작용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 하거든요. :)